일상다반사

추석의 잊혀진 이야기 — 조상들은 어떻게 추석을 보냈을까

영구원(09One) 2026. 9. 22. 04:00

추석의 잊혀진 이야기 — 조상들은 어떻게 추석을 보냈을까


서론: 한가위, 그 잊혀진 시간 속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한마디에 담긴 감정은 현대인에게도 충분히 와닿는다. 그러나 정작 '한가위'라는 이름의 깊이,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천 년의 풍속과 의례, 놀이와 신앙의 층위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날 추석은 '귀성길 정체'와 '명절 노동'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그 본래의 의미—가을 수확에 대한 감사, 보름달에 대한 경외, 공동체적 대동(大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궁전의 길쌈놀이에서 시작해 고려의 아홉 속절(俗節)을 지나, 조선시대 유생들의 차례상 위에 놓인 홍동백서(紅東白西)까지.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의례준칙'이 전통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코로나19가 명절 문화를 어떻게 바꿨는지까지. 추석의 잊혀진 이야기를 복원한다(citation:1)(citation:8).

 

 

 

 

 

 


CHAPTER 1. '한가위'의 어원 — 보름달이 가장 밝은 밤

한가위, 그 이름의 의미

추석(秋夕)은 한자 그대로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날을 '한가위'라고 불렀다. '한'은 '크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며, '가위'는 '가운데'를 의미한다. 즉, 음력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추석의 기원을 학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나는 고대 농경사회의 추수제(秋收祭)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다. 곡식이 무르익는 가을에 조상에게 풍년을 감사하고 마을공동체가 음식을 나누며 수확을 축하한 것이 추석의 뿌리라는 것이다

 

(citation:10). 다른 하나는 달 숭배 사상과 관련이 있다. 보름달은 원만과 충만을 상징하며, 가족과 공동체의 화합을 기원하는 자연적 신앙의 대상이었다(citation:10).

 

음력으로 표기하는 우리의 역법(曆法)은 태음태양력으로, 음력이 중심을 이루되 양력도 가미된 것이다(citation:1). 24절후는 태양력을 바탕으로 하기에 양력 날짜로 고정되어 있다(citation:1). 추석은 음력 8월 15일, 즉 한 해 중 달이 가장 밝고 원만하게 차오르는 날을 기점으로 한다(citation:10). 정월의 달이 시작과 으뜸을 의미한다면, 추석의 달은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는 풍요의 상징이다

(citation:10). 한가위의 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한다"고 한다(citation:10).

달이 왜 중요했는가

우리 민족처럼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음력을 사용했던 사회에서는 달의 움직임에 따라 어느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가 정해졌기 때문에 달에 관심이 많았다(citation:9). 특히 둥글게 가득 찬 보름달을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생각했고, 둥근 보름달을 향해 우리네 삶도 풍요로워지기를 빌었다(citation:9). 정월 대보름은 새로운 해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보름날이니 특별했고, 추석의 보름달은 수확의 결실을 의미하니 더욱 특별했다(citation:9)(citation:10).

 

 

 

 


CHAPTER 2. 삼국시대 — 추석의 원형이 탄생하다

신라 가배(嘉俳): 추석의 최초 기록

추석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 유리왕조에 등장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신라 6부의 여성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길쌈을 한다. 승부에서 진 편은 이긴 편에게 크게 대접하고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다(citation:1).

 

이 기록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추석이 이미 삼국시대에 국가적 축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 둘째, 추석이 여성 축제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는 점. 셋째, 길쌈 문화가 추석의 핵심 콘텐츠였다는 점이다(citation:1).

 

신라에서는 이 '가배(嘉俳)' 외에도 다양한 놀이가 추석과 연계되었다. 연날리기, 활쏘기, 투호, 격구, 축국, 저포, 씨름 등이 문헌이나 고분벽화에 나타난다(citation:1). 특히 씨름은 잔디밭이나 백사장에서 두 남자가 힘과 기술을 겨루는 놀이로, 당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citation:2).

중국 사서에 기록된 신라의 추석

흥미로운 점은 추석 풍습이 중국 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수서(隋書)』 동이전 신라조에는 "8월 보름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을 모아 활쏘기를 한다"고 했으며, 『북사(北史)』 신라조에는 "8월 보름에 음악을 울리고 관리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포목을 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citation:1). 이웃 나라의 사가(史家)가 기록할 만큼, 신라의 추석은 화려하고 격식 있는 국가 행사였다.

삼국시대의 다른 세시풍속

삼국시대에는 추석 외에도 다양한 세시풍속이 존재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은 고대 제천의례로서 주기성을 띤 의례였고, 이는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세시풍속의 원류라 할 수 있다(citation:1)(citation:8). 특히 고구려의 수석전(水石戰)은 『수서』와 『北史』에 기록되어 있으며, 애초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였다고 한다(citation:1).

삼국시대 세시풍속 비교표

국가 대표 제천의례 추석 관련 풍습 기타 세시풍속
신라 오묘제, 사직제, 농제 가배(길쌈놀이), 활쏘기, 씨름 유두(流頭), 원일(설날)
고구려 동맹(東盟), 귀신제, 영성제 — 수석전(水石戰)
백제 천신제, 시조제, 천지제 — 문헌 기록 부족
부여 영고(迎鼓) — 농경시필기 제례
예 무천(舞天) — —

 

 

 

 

 


CHAPTER 3. 고려시대 — 9대 속절(俗節)과 추석의 확립

고려의 아홉 가지 명절

고려시대에는 오늘날 논의되는 세시풍속이 거의 모두 존재했다(citation:1).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citation:1)(citation:8).

순번 속절 시기 오늘날 명칭
1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
2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정월대보름
3 상사(上巳) 3월 초사흗날 삼짇날
4 한식(寒食) 동지 후 105일째 한식
5 단오(端午) 5월 초닷새 단오
6 추석(秋夕) 음력 8월 보름 추석·한가위
7 팔관(八關) 11월 (현재 전승 안 됨)
8 동지(冬至) 양력 12월 22일경 동지
9 중구(重九) 9월 초아흐레 중양절

 

이 9대 속절은 대표적으로 꼽히는 명절이며, 그밖에도 다달이 크고 작은 세시풍속이 행해졌다(citation:1). 고려 속요 「동동(動動)」을 비롯하여 개인 문집에도 세시명절과 풍속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다(citation:1).

고려의 추석: 불교국가의 명절

고려는 불교국가였으므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citation:5). 조상께 제를 올리는 문화는 고려 말부터 중국의 주자학(朱子學)이 전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citation:5). 그러나 추석 자체는 이미 국가적 명절로서 확립되어 있었으며, 불교적 색채와 농경 감사의 의미가 결합된 형태로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citation:8).

 

 

 

 


CHAPTER 4. 조선시대 — 4대 명절의 정점, 추석

조선의 4대 명절 체계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식이 설날·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citation:1). 동지를 더하여 5대 명절로 여기기도 했으나(citation:1), 다른 명절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간에서는 전 시대보다 세시풍속이 더욱 다양해졌다(citation:1).

 

조선시대 세시풍속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것은 물론 각 지역에서 행해진 세시풍속도 소개되어 있으며, 때로는 저자가 현지에서 직접 보고 조사한 것들도 눈에 띤다(citation:1).

조선시대 4대 명절 비교

명절 시기 핵심 의례 대표 놀이 대표 음식
설날 정월 초하루 차례, 세배 널뛰기, 윷놀이 떡국, 세배술
한식 동지 후 105일 성묘, 산불 끄기 — 약식
단오 5월 5일 관리 씻기 그네뛰기, 씨름 수리취떡
추석 8월 15일 차례, 성묘 씨름, 강강술래 송편, 햅쌀밥

추석 차례상의 격식: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진실

매년 명절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 차례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citation:13). 일각에서는 "홍동백서는 주자가례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citation:13).

 

1920년 6월 26일 『조선일보』에 실린 "조선유림에게 고함"이라는 글에는 이미 "제수를 차릴 때 홍동백서가 어쩌니 저쩌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citation:13). 이는 홍동백서라는 개념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citation:13). 일제가 강제한 국적 불명의 풍속이 아니라, 유교의 예법에 대해 대단한 지식이 없는 '보통유자'들도 입에 담으며 거들먹거리는 흔한 지식, 즉 이미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는 전통이었던 것이다(citation:13).

 

1961년 2월 16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에도 "진설법은 까다롭고 또 이른바 가가례(家家禮)라, 집집마다 예법이 다를 수 있으나 대체로 기본법칙은 홍동백서요 조동율서다"라고 적혀 있다(citation:13). 박정희가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한 해가 1968년이니, 홍동백서는 그보다 훨씬 앞서 한반도에 존재했던 셈이다(citation:13).

차례(茶禮)와 제사(祭祀)의 차이

추석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차례와 제사의 관계다. 두 의례는 엄밀히 다르다(citation:5).

구분 차례(茶禮) 제사(祭祀)
시기 명절날 아침 자시(밤 11시~새벽 1시)
빈도 설날과 추석 (연 2회) 기제사(기일), 묘제 등
음식 술·과일·포(주과포) + 시절 음식 풀상차림 (4대 봉사까지)
유래 원래 차를 올리는 예(禮) 고대 천지신명 제례에서 유래
전파 시기 삼국시대~ 고려 말~조선 (주자학 전래 이후)
원래 성격 간소한 약식 제사 신분에 따라 2~4대 봉사

차례(茶禮)의 한문에서도 보이듯이 차례는 원래 차를 올리는 예(禮)다. 이는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의 차례상에는 차가 오르지 않았다(citation:5). 원래 차례 때는 술과 과일, 포에 시절 음식을 차려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약식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citation:5). 조선시대 명문가 종갓집에서도 간소한 차례 상차림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citation:5).

 

그런데 제사가 널리 전파되어 지금까지 이어온 데에는 조상이 후손을 지켜주고 복을 준다는 기복(祈福) 사상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citation:5).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제사상은 본래 소박하고 간소했으나, 조상 제사를 통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경향으로 점점 화려하고 복잡해졌다고 한다(citation:5).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부자·서민 할 것 없이 4대 봉사에 집착하게 되었다(citation:5).

 

 

 

 


CHAPTER 5. 추석 민속놀이 — 조상들의 축제

추석은 차례만 지내는 엄숙한 날이 아니었다. 차례를 마친 후에는 마을 곳곳에서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이 놀이들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풍년을 기원하고 공동체를 결속하는 의례적 성격을 지녔다(citation:2)(citation:8).

추석 대표 민속놀이 총정리

놀이 참가 인원 장소 유래와 의미 난이도
씨름 2명 (관중 다수) 잔디밭·백사장 생존권 다툼에서 유래한 격투(citation:2) ★★★
강강술래 다수 (주로 여성) 마을 광장·해변 임진왜란 때 군사전략으로 활용(citation:2), 유네스코 지정 ★★
줄다리기 대규모 (편 갈라) 마을 광장 풍년 기원, 마을 단합(citation:2) ★★
제기차기 1~2명 실내외 무관 고대 축국(蹴鞠)에서 유래, 겨울 정초 놀이(citation:2) ★
윷놀이 2~4명 실내외 무관 부여 관직명에서 유래, 풍흉 점치기에서 시작(citation:2) ★
알까기 2명 평평한 바닥 바둑돌을 밀어내는 전략 게임(citation:2) ★★
오목 2명 바둑판 다섯 돌 나란히 놓기(citation:2) ★★

강강술래: 유네스코가 인정한 추석의 노래

강강술래는 한가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 민속놀이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citation:2). 커다란 보름달 아래에서 여인들이 손을 잡고 보름달 같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부르는 놀이인데, 처음에는 천천히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점점 빨라지는 원무(圓舞)다(citation:2).

 

기록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때 전남 해안지역에서 일종의 군사전략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citation:2).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여인들에게 남자 옷을 입힌 후 산을 돌게 했는데, 이것으로 우리나라 병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왜군들을 속였다고 전해진다(citation:2). 조선시대 집 안에만 머물며 밖으로 나가기 힘들었던 여인들이 밤새도록 놀 수 있는 놀이였기에 특히 사랑받았다(citation:2).

씨름과 줄다리기: 힘의 축제

씨름은 아직 무기의 생산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절, 다른 집단과 생존권을 두고 다투게 되면서 몸을 쓰는 격투가 주로 쓰였을 것이고, 이것이 씨름의 시초가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citation:2). 전신을 이용한 운동경기로 예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citation:2).

줄다리기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두 편으로 나누어 하나의 줄을 잡고 양쪽에서 잡아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citation:2).

예로부터 대보름에 행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지만, 지방에 따라서 추석이나 단오에도 행해졌다(citation:2). 충북의 보은과 옥천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하며 마을 간 협력을 다졌는데(citation:10), 이긴 편은 그 해 풍년이 들고 무병·무재하다고 믿었다(citation:9).

윷놀이: 농사의 풍흉을 점치다

오늘날 단순한 놀이로 인식되는 윷놀이의 시작은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개인의 길흉을 점치는 점술 도구였다(citation:2). 윷의 기원은 부여의 관직명이었던 '저가, 구가, 우가, 마가'의 이름을 본떠 '저가(도)-돼지, 구가(개)-개, 우가(윷)-소, 마가(모)-말'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citation:2). 이것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놀이로 변화했다(citation:2).

 

 

 

 


CHAPTER 6. 추석 음식 — 송편, 햅쌀, 그리고 가을의 맛

송편: 보름달을 빚다

송편(松편)은 솔잎(松葉) 위에 떡을 쪄서 솔향이 은은하게 배어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름달처럼 둥근 모양으로 빚어 풍성함과 완전함을 상징하며,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어 옛 여성들은 송편 빚기 실력을 자랑하곤 했다.

 

조선시대에는 부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송편을 빚으며 삶의 경험을 교환하고,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전통을 자연스럽게 학습했다(citation:10). 송편 빚기는 단순한 조리 과정이 아니라 세대 간 지식 전승과 공동체 유대의 장이었다.

햅쌀밥과 차례 음식

추석에는 한 해 농사를 감사하며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차례상에 올렸다(citation:5).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의 격식에 대해, 홍동백서(紅東白西)는 '붉은 것은 동쪽(오른쪽), 흰 것은 서쪽(왼쪽)에 놓는다'는 원칙이며, 조율이시(棗栗梨枾)는 '대추-밤-배-감' 순서로 놓는다는 배치법이다(citation:13).

추석 절식(節食)의 의미

세시풍속에는 명절에 특별히 먹는 음식인 절식(節食)이라는 형태가 있다(citation:8). 추석의 송편, 설날의 떡국, 정월대보름의 오곡밥과 나물 등이 모두 절식에 해당한다. 이 음식들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풍년을 기원하고 건강을 챙기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citation:9).

 

 

 

 


CHAPTER 7. 세시풍속의 기능 — 왜 명절은 필요했는가

세시풍속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적 장치였다(citation:8)(citation:10).

세시풍속의 7대 기능

기능 설명 추석에서의 구체적 예
종교적 기능 신에 대한 감사, 풍년 기원(citation:8) 차례를 통한 조상 감사
사회적 기능 공동체 소속감 강화(citation:8) 가족·친족 회합
윤리적 기능 조상·어른에 대한 예의(citation:8) 차례, 성묘
생산적 기능 휴식과 자연 재생을 통한 생산력 증가(citation:8) 추수 후 재충전
휴식적 기능 고단한 생업의 일시 중단(citation:8) 추석 연휴
예능적 기능 전통예술 전승(citation:8) 강강술래, 씨름, 풍물
통합적 기능 흩어진 가족의 재결합(citation:8) 귀성, 가족 모임

 

충북 지역의 사례에서 특히 잘 드러나는 것은 공동체적 연대의 기능이다. 세시풍속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농경 사회의 주기적인 긴장과 고단함을 풀고 공동체적 결속을 강화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했다(citation:10).

 

 

 

 


CHAPTER 8.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 전통의 변형

1934년 의례준칙: 전통의 첫 번째 균열

추석 문화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국가 신도(神道)를 앞세운 일제는 조선의 제사를 타율적으로 세속화시켰다(citation:11). 1934년 조선총독부는 '전통적인 가례의 수행이 무리한 대출로 인해 경제적 파산을 감수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명분으로 전통 관혼상제를 대폭 축소·간소화하는 '의례준칙'을 반포했다(citation:11)(citation:13).

의례준칙 이후 변화표

변화 항목 이전 (전통) 이후 (의례준칙, 1934) 오늘날
제사 범위 4대 봉사 2대 봉사로 한정 2대 이하로 축소 추세
제사 빈도 1년에 수십 차례 설·추석 명절 제사와 기제사로 축소 연 2회 (설·추석)
신주 실제 신주 사용 지방이나 영정사진으로 대체 사진·지방 사용 보편화
차례 빈도 월별·계절별 다양 설·추석 2회로 축소 설·추석 2회
장례 기간 5일~7일장 3일 이내 권장 3일장이 표준

 

해방 이후에도 이 경향은 지속했다(citation:11). '허례허식 타파'라는 명분 아래 '국민표준의례'→'가정의례준칙'→'건전가정의례준칙'을 거치면서 제사의 의미에 대한 성찰보다 경제적 효율성과 편리성 추구가 가속화되었다(citation:11).

가정의례준칙과 박정희

1968년 박정희 정권은 '가정의례준칙'을 공표하고 이듬해 시행했다(citation:13). 1973년에는 이를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바꾸어 강제성 있는 규범으로 끌어올렸다(citation:13). 민간 가정의례를 법령으로 제도화하여 권고를 넘어 강제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citation:13).

 

박정희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정해진 날짜만, 최대한 짧게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해야 했다(citation:13). 산업화·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 명절의 격식과 절차는 급격히 간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CHAPTER 9. 세대별 변화 — 전통에서 선택으로

제사 인식의 세대별 변화

명절 스트레스의 핵심인 제사와 차례에 대한 인식은 세대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citation:11).

세대 연령대 제사 폐지 동의율 부부 각자 가족과 명절 보내기 동의
베이비붐세대 50대 이상 약 33% (3분의 1) 13~23%
X세대 40대 약 50% (2분의 1) —
MZ세대 10~30대 약 63~67% (3분의 2 근접) 약 50%

 

'제사가 필요 없다'는 의견은 2000년 7.3%에서 2021년 45.6%로 20년 만에 6배 이상 급증했다(citation:11). 베이비붐 세대가 '제사를 지속하되 어떻게 간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과 달리, MZ세대는 '제사가 꼭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citation:11).

변화의 속도표

제사 불필요 의견 비율 변화

2000년  ▓░░░░░░░░░░░░░░░░░░░░░░░░░░░░░  7.3%
2021년  ▓▓▓▓▓▓▓▓▓▓▓▓▓▓▓░░░░░░░░░░░░░░  45.6%

        0%   10%   20%   30%   40%   50%

 

이 변화의 배경에는 MZ세대의 현실적 조건이 있다. 이들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를 넘어 주택과 경력, 개인적 희망·취미와 인간관계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citation:11). 안정적인 가족을 형성하고 유지할 여력 자체가 없어지면서, 제사와 차례의 기반이 되는 가족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citation:11).

 

 

 

 


CHAPTER 10. 코로나19 — 명절 문화의 자연 실험

팬데믹이 만들어낸 변화

코로나19는 한국의 명절 문화에 유례없는 '자연 실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수많은 국민이 처음으로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 추석'을 경험한 것이다(citation:11).

 

코로나 이후 명절증후군을 겪지 않는다고 대답한 3040세대의 비율은 56.2%에 달했으며, 여성들도 44.8%가 해당했다(citation:11)(citation:12). 힘든 노동의 시간이었던 제사와 명절이 즐거운 만남의 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citation:11).

차례 축소·폐지의 가속

코로나19를 계기로 차례를 완전히 없애는 가정이 속출했다(citation:11).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어머니가 이번 추석부터 차례를 지내지 말자고 했다"는 글들이 다수 게재되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 변화를 가속화한 촉매제가 된 것이다.

 

 

 

 


CHAPTER 11. 충북의 추석 — 거북놀이와 마을 공동체

음성군 거북놀이: 추석에 피어난 마을의 축제

충북 음성군에는 추석과 밀접히 연관된 특별한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바로 거북놀이다(citation:10). 거북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적 성격을 띤다(citation:10).

 

거북은 장수와 다산, 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음성과 진천을 비롯한 충북 일대에서는 추석 무렵 이 거북놀이를 통해 공동체의 번영을 염원했다(citation:10). 마을 사람들은 이를 두고 흔히 "거북이 놀린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거북을 술과 음식으로 배불리 먹인다는 의미다(citation:10).

 

충북의 세시풍속이 보여주는 특징은 '자연과 상징을 연결한 공동체적 놀이'라는 점이다(citation:10). 산악과 평야가 고르게 분포된 충북에서는 마을마다 산제를 지내며 풍년과 안녕을 빌었고, 하천 주변에서는 물과 관련된 놀이와 제의가 발달했다(citation:10).

충북 지역 세시풍속 지도

지역 세시풍속 시기 특징
음성·진천 거북놀이 추석 장수·다산·복 기원(citation:10)
보은·옥천 줄다리기 정월대보름 마을 간 협력(citation:10)
제천 의림지 제의 다양 물과 연계된 제의(citation:10)
괴산·충주 농악·풍물굿 다양 흥겨운 장단 속 마을 화합(citation:10)

 

 

 

 

 


CHAPTER 12. 추석의 현재와 미래 — 전통의 재해석

명절의 의미를 되찾다

오늘날 추석은 여전히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불리지만, 그 속뜻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citation:10). 추석은 단순한 귀향과 선물 교환의 시간이 아니라, 삶의 주기와 공동체의 정신을 확인하는 의례적 시공간이었다(citation:10). 이 명절을 통해 조상은 현재 세대와 연결되고, 마을은 한 해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했으며, 가족은 유대와 정을 다시 다졌다(citation:10).

세시풍속의 가치 재평가

세시풍속은 문화콘텐츠라는 총체적인 시각에서 볼 때 여느 문화자원과 견주어도 독창성과 차별성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소재로 재평가해야 한다(citation:8). 유네스코가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전을 꾀하고 있듯(citation:8), 강강술래처럼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는 세시풍속도 있다(citation:2). 중국은 2011년에 아리랑, 가야금예술, 판소리, 씨름, 중추절(추석) 등을 조선족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citation:3). 우리의 전통을 우리가 먼저 지키고 계승하는 일이 더욱 시급해진 시대다.

변화를 수용하되, 정신은 잇다

세시풍속의 형태별로 전승주체가 다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 발굴과 보전이 매우 시급하며, 동시에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citation:8). 가족 사이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의례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citation:11).

 

세대간 접근 자세와 형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citation:11). 제사나 차례의 방식은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원활한 대화와 공감적 소통의 산물일 때라야, 명절은 가족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고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정서적 회복의 장이 될 수 있다(citation:11).

 

 

 

 


결론: 한가위의 보름달은 여전히 뜬다

신라 궁전의 여성들이 길쌈을 겨루던 가배(嘉俳)에서 시작해, 고려의 9대 속절을 거치며 확립되고, 조선시대 유생들이 홍동백서 원칙에 따라 차례상을 차리던 그 시절(citation:13). 일제의 의례준칙이 전통을 변형하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족 구조를 바꾸고, MZ세대가 "제사가 꼭 필요한가"라고 질문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citation:11).

 

추석의 형식은 천 년 동안 끊임없이 변해왔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핵심 정신—가을 수확에 대한 감사, 보름달에 대한 경외, 공동체적 유대의 확인—은 변하지 않았다(citation:10).

 

남향 연구원의 말처럼, 추석의 보름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한다"(citation:10). 그 달 아래 송편을 빚고, 강강술래를 돌고, 차례를 지내고, 가족이 모여앉아 웃는 풍경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가위는 계속될 것이다.

 

형식이 변해도 정신은 남는다. 한가위의 보름달은, 오늘도 뜬다.

 

 

 

 


참고 자료

  1. 한국민속학회 - 세시풍속의 연원과 역사적 변천: https://folkency.nfm.go.kr
  2. 행정안전부 - 추석 민속놀이의 유래와 배경: https://www.mois.go.kr
  3. 글로벌뉴스통신 - 한글과 무형문화재, 전통문화 보호의 시급성: https://www.globalnewsagency.kr
  4. 행정안전부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차례와 제사의 차이: https://theme.archives.go.kr
  5. 국가유산청 - 전통을 지키는 장인정신과 전통 단위: https://www.nculture.org
  6. 인테러뱅 - 세시풍속의 의미와 기능, 전통문화의 재해석: https://www.interrobang.co.kr
  7. 국가기록원 - 정월대보름 민속놀이와 풍속, 달의 의미: https://theme.archives.go.kr
  8. 충청리뷰 - 충북 세시풍속과 추석, 음성군 거북놀이: https://www.ccreview.co.kr
  9. 중앙선데이 - 코로나가 바꾼 추석, 차례와 제사의 변화: https://www.joongang.co.kr
  10. 신동아 - 홍동백서 차례상 전통의 역사적 근거: https://ww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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